'정보의 숨김과 공개'에 의한 재미
이런 재미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떡밥을 많이 풀었다가 나중에 그것들이 정교하게 회수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조각나 있던 거대한 퍼즐이 점점 완전하게 짜맞춰쳐갈 때의 짜릿한 재미'.
그리고 그런 재미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반전 요소'에도 큰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사실은 주인공이 모든 사건의 주범이었다', '사실 A는 B의 숨겨진 자식이었다', '그 보물상자에 숨겨져 있던 물건은 ㅇㅇ였다' 대충 이런 전개들 말이야. 나는 그런 '떡밥 회수, 또는 반전 요소'가 주는 재미를, '정보의 숨김과 공개'에 의한 재미라고 이름짓고 싶다.
음... 너무 기니까 '정공잼'이라고 부르자.
아무튼, 정공잼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스포일러(반전 요소의 누설)를 당하면, '100만큼의 재미 중에서 90 이상을 잃은 것처럼' 시시해하면서 이후 내용을 더 볼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스토리의 재미는 정공잼만이 아니다. 인간관계, 내적 갈등, 비장하거나 애틋한 상황에서 사람의 감정을 뒤흔드는 연출들... 그것들 또한 중요한 재미고, 그런 재미를 중시한다면, 설령 스포일러를 당해도 100만큼의 재미 중에서 30 정도만 잃는 선에서 그친다. 왜냐하면, 그 '누설된 정보'에 대해 각 인물들이 어떤 태도와 감정을 갖는지에 관한 심리 묘사와 연출이 여전히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사실은 주인공이 모든 사건의 주범이었다'라는 초특급 스포일러를 당했다고 치자. 모든 의문의 정답을 이제 알았으니 그걸로 끝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창작물의 스토리는 수학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답을 알아도 여전히 더 찾을 수 있는 재미가 있다. 나는 '그 정답에 도달하기까지의 상세한 과정들 하나하나'가 재미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이 그 충격적인 진실을 깨닫게 되는 계기는 무엇인지? 그 계기에 도달하기까지 어떤 여정과 과정을 거치는지? 주인공에 대해 점점 쌓아가는 각각의 감정들은 얼마나 격정적이고 더럽고 씁쓸하고 허망한지? 그런 것들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것들에서 오는 재미는, '정보의 숨김과 공개'로는 느낄 수 없는 재미다. 예를 들어, '진실을 알게 된 주인공의 동료 A는 극도의 분노를 느끼고 주인공에게 칼빵을 놓았다'라는 정보는 그냥 정보일 뿐이다. 반면에, 동료 A가 그 칼빵을 놓는 순간, 지금까지 주인공과 함께 여행하면서 느낀 기쁨과 슬픔 같은 것들을 회상하면서 느끼는 '감정'들 하나하나는, 충분한 연출과 시간을 들여서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정보'를 스포일러하기는 쉽지만, '감정'을 스포일러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그 재미는 (약간 손실은 되겠지만) 대체로 보장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이성과 감성으로 굳이 나누자면, 정공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성적인 경향이 좀 더 강한 것 같고, 그 외의 재미(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차근차근 쌓여가는 인간관계와 그에 딸린 감정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감성적인 경향이 좀 더 강한 것 같다.
아니면 말고...
이건 전에도 썼던 글 같긴 하지만 그냥 또 쓰고 싶어서 비슷한 글을 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