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2019년 한국 영화) 감상문 2
앞의 글에서는 좋은 점만 얘기했으니까, 그리고 일반인도 전문가도 다들 이 영화를 극찬하기만 하니까, 반골 기질을 살려서 굳이 단점을 찾아내서 지적해 보자면...
일단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장면'들이 문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초반에는 몰입하기가 좀 힘들었다. 중반부터는 긴박한 스릴러 분위기에 완전히 몰입했지만...
예를 들면, 주인공네 가족 중에서 아들과 딸은 둘 다 성인인 것 같은데 자기 개인 방도 없이 부모님과 한 공간에서 살고 있는데, 그게 좀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몰입이 좀 안 됐다. 아들만 둘이면 모르겠지만 아들 하나 딸 하나잖아...
가난하면 집에 자기 방이 없을 수야 있겠지만, 거기에서 벗어나서 숙식 제공형 알바를 한다든가 고시원 같은 데서 산다든가 하는 식으로 변화를 주려는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고, 바로 그 부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하긴 뭐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개념도 있으니까, 어떤 열악한 환경에 적응해 버리면 그 환경이 이상하다는 걸 별로 느끼지 못하고 그냥 거기에 안주해 버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아주 비현실적이진 않겠다
부유층 집의 아내 쪽은 지능 장애가 의심될 정도로 너무 사람을 잘 믿던데, 그 부분도 비현실적이었다. 초반에 '사모님이 좀 심플하다' 라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심플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너무 이상했다.
일단 주인공 가족의 아들이 자기 딸한테 영어 과외를 하는 걸 보고 어떻게 전혀 의심을 안 할 수가 있지? 영어 과외 하라고 불러 놨더니, 막상 하는 얘기를 들어 보면 영어랑은 전혀 관계없는 소리만 늘어놓던데. 주인공 가족의 딸이 미술 전문가라는 부분에도 전혀 의심을 안 하더라. 딸의 연기력이 좋았다고는 해도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4인 가족이 전부 한 곳에서 일자리를 구한다는 그 우연이 너무 억지스럽고 납득이 안 갔다.
그리고 지하실 입구가 숨겨져 있는 걸 부유층 부부가 전혀 모를 수가 있나? 가정부가 남편한테 먹을 거 갖다주러 최소 한 주에 한 번쯤은 지하실을 들락거릴 텐데. 그리고 지하실의 모양도 (기묘하게 꺾여 있어서 내 취향이긴 했지만)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핵전쟁 같은 걸 대비한 방공호 역할이라고 생각해도, 그렇게 구질구질한 공간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것들이 현실성을 떨어뜨려서 초반에는 몰입이 충분히 안 됐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유층에 대해 흔히 상상하는, 한국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그런 상상의 모습을 너무 그대로 표현해 둔 것도 좀 마음에 안 들었다. 부유층은 꼭 말끝마다 영어를 섞어 쓰나? 무슨 패션 잡지 문체도 아니고. 그리고 가난한 집안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코를 막는 것도 납득이 안 갔다. 진짜 코를 찌를 정도의 악취가 아니라면, 상대방이 무안해할 걸 감안해서, 그런 노골적인 동작은 안 하지 않나?
마치 감독이 '최대한 전형적인 인물'을 연기하라고 주문한 것 같더라. 부유층 가족은 무례하고 멍청한 인물로 연기하라고 지시한 것 같고, 주인공 가족은 양심없는 악당같은 인물로 연기하도록 지시한 것 같고. 그런 모습들이 너무 전형적이어서 현실감이 좀 떨어졌던 것 같다.
어차피 영화는 현실이 아니고 지어낸 이야기인데 왜 현실감을 따지냐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야기에 몰입하려면 현실감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전체 이야기 안에서 어떤 부분은 현실감을 전혀 신경 안 써도 되지만, 다른 어떤 부분은 현실감을 최대한 신경써야 한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어서 그 둘의 구분을 잘 할 수는 없지만... 대충 그런 느낌이다
아무튼 뭔가에 대해 단점을 지적하는 건 좀 어렵다
니가 뭔데 이런 초 흥행 대작에 악평을 남기냐 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