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2019년 한국 영화) 감상문 1

기생충(2019년 한국 영화)을 이제서야 봤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았다는 평가가 많던데 그게 이해가 갔다

아마도
1. 전체 줄거리를 이해하기 쉽고
2. 보편적인 욕망을 건드렸고(부자가 되고 싶어!)
3. 스릴러 요소와 반전이 많아서
대중성이 있는 것 같고

작품성은 뭐 말할 것도 없겠지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게 촘촘하게 배치돼 있으니까
작품성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물론 작품이 그 자체로 재미있다고 해서 반드시 흥행한다고는 보장할 수 없고, 흥행에 개입하는 외적인 요소는 아주 다양하다(스크린 독점, 동시기 경쟁작의 여부, 그 순간의 유행, 사람들의 입소문, 회사 차원에서의 마케팅, 그냥 우연 등)

그런 것들까지 고려해 보면, 결국 작품의 만듦새와 흥행 사이의 인과관계를 이야기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이고... 그러니까 그냥 흥행 여부와는 별개로 이 영화의 좋은 점과 아쉬운 점들을 많이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일단 초반부에서는 가벼운 스릴러 전개가 좋았다. 거짓말이 들통나면 큰일나는 상황, 숨어야 하는 상황. 대충 그런 전개들... 그러다가 '해고당했던 가정부'가 들이닥치는 중반부부터 분위기가 심각하고 무섭고 우울해지는 점도 좋았다. 나는 가정부가 다시 돌아온 이유를 '헉 이 가정부가 주인공네 가족의 정체를 꿰뚫어본 거로군'이라고 추측했는데, 정작 집에 들어온 가정부가 온 힘을 다해서 지하실의 비밀 문을 여는 건 정말 기괴하면서 전혀 예상 못한 상황이었다. 이야기가 급박하게 흘러갈 거라는 느낌도 들고...

비슷한 이유로, 이 가정부가 인터폰 영상에서 뭔가 은근한 광기가 느껴지는 구질구질한 모습으로 나오는 부분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 '어쩐지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다'라는 느낌을 들게 하는 그런 분장과 표정연기와 카메라 구도였다. 그 전까지는 주인공 가족이 남의 집을 차지해서 술주정 부리는 장면이 그냥 평화롭고 재미있기만 했었는데...

그 후에 나오는 반전, 반전의 반전, 반전의 반전의 반전들도 다 좋았다. 지하실의 90도 꺾이고 내려가고 또 꺾이고 또 내려가는 비좁고 기묘한 모습도 좋았고(마치 이토 준지 공포 만화에 나올 것 같은 기괴한 공간이었음), 자동으로 켜지는 줄로만 알았던 전등이 사실은 버튼식으로 켜지고 꺼지는 거였다는 점도 소름끼쳤고, 지하실 안에서 외부로 모스 부호를 보내서 처절하게 절박하게 무력하게 절망적으로 구조요청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근데 반전 얘기하니까 문득 생각났는데, 등장인물을 살았는지 죽었는지 애매한 상태로 남겨두고서 나중에 반전 요소로 또 써먹는 짓은 좀 안 했으면 좋겠다.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그래... 예전에 본 '숨바꼭질'이라는 한국 영화도 '집을 소재로 한 빈부격차'를 표현하는 영화였는데, 거기에서도 악역이 분명히 죽을 만큼 쳐맞고 쳐맞고 또 쳐맞았는데도 자꾸 살아나서 갑자기 튀어나와서 주인공을 습격하는 장면이 많았다. 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실하게 해 줘...

아무튼. 영화를 보다 보면 '기생충'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뭔지 추측하게 되는데, 스토리 전개에 따라 그 추측이 계속 휙휙 바뀌게 되는 점도 좋았다. 맨 처음에는 남의 집 와이파이를 따와서 쓰는 일가족의 일상이 기생충인가 싶었다가, 나중에는 부유층 집안에 줄줄이 알바로 들어가는 게 기생충 같았고, 더 나중에는 지하실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이 기생충 같고...

부유층이 가볍게 제공한 임시 무대의 아래에서 빈민층끼리 진지하게 처절하게 대립하는 구도도 인상적이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한 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운,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게 되는 이야기... 쓴웃음이 나오는 이야기...

주인공 가족의 표정 변화도 좋았다. 초반에 각자 일자리를 막 구한 시점에서는 여유롭고 느긋한 표정을 짓다가, 그 후에 그 일자리가 망가지고 일상 전체가 씹창난 시점에서는 그런 표정이 싹 사라지고, 비참하고 구질구질하고 공허한 표정만 남더라. 그 두 표정의 엄청난 차이가 정말 인상깊었다.

이야기 후반부에서 주인공네 집이 물에 잠긴 부분도 인상깊었다. 배우들 정말 고생 많이 했을 것 같고 대단하고 이런 연출을 준비한 관계자들도 다들 대단하다. 특히 이 부분에서 내가 이 영화 전체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주인공 가족의 딸(기정)이 변기 위에서 담배를 피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어휴 시발...

집 안의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긴 상황에서 변기에서도 계속 물이 역류하는데, 진짜 비참하고 끔찍했다. 그냥 어느 낯선 건물의 변기가 아니잖아. 자기 생활공간의, 자기가 쉬는 공간의 변기잖아. 그게 터진 거잖아. 씨발 존나 구질구질해...

그런 상황에서 딸은 체념한 건지 감정을 정리하고 싶은 건지, 그런 역류하는 변기의 뚜껑을 겨우겨우 닫고 그 위에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는데, 나는 그 장면이 '현실의 구체적인 고통들로부터 어떻게든 무덤덤해지고 싶어서, 초연해지고 싶어서 담배를 피려고 시도하지만 그런 잠깐 숨 돌릴 여유조차도 주어지지 않는 무력한 상황'을 표현하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변기에서 똥물이 계속 역류하는 구체적이고 구질구질한 고통을 어떻게 초연하게 넘길 수가 있나? 그럴 수가 없지...

쓰다 보니 너무 길어졌는데 다음 글에 이어서 써야겠다
 
'정보의 숨김과 공개'에 의한 재미
이무송의 노래 '사는 게 뭔지'를 듣는데...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Oh0-loMTP3g
https://www.youtube.com/watch?v=dc5JZZHsHTA
책 '총, 균, 쇠'는 제목 번역을 정말 잘 한 것 같다.
원래 제목을 그대로 옮겨서 '총기류, 세균, 그리고 철'이라고 지었었으면 그다지 흥미를 못 끌었을 것 같다.
'문화콘텐츠와 심리학'이라는 글
'각 분야의 최강자들이 거대한 적에 맞서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장면'은 대체 왜 감동적인 걸까? 이유를 굳이 설명하려면 원시시대부터 설명해야 할 듯
창작물의 흥행
나는 온라인게임 같은 걸 할 때 무조건 여캐만 한다
여캐를 고르는 게 너무 당연하고, 남캐를 고르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내가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것도 아닌데
대체 어쩌다 이런 취향이 된 걸까
일상이 피곤하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인기인 건가?
하지만 사람의 일상은 예전에도 그렇지 않았나?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대부분의 서민들은 일상이 스트레스고 피곤하고 구질구질하지 않았나?
왜 스낵컬처라는 취향이 하필 최근에서야 뜨고 있는 걸까?
모바일 환경 때문인가? 그것만으로는 납득이 안 가는군
인도 영화 보고 싶다
어떤게 재밌을까
그... 특유의 막나가는 연출들이 매우 흥미롭던데
오늘은 '아고물'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정말 사람의 취향이란 넓고 깊구나... 라고 생각했다
데미안, 죽은 시인의 사회
이런 작품들은 너무 건전하고 바람직하다
좀 음습하고 뒤틀리고 꼬여야 재미가 있다
나는 스케일이 큰 이야기가 어렵고 지루하다
거대한 세계관, 복잡한 역사, 정치인들의 권력 투쟁, 여러 세력들의 전쟁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야(스타워즈, 스타트렉 같은 게 나한텐 그런 인상이다)
반면에 내가 가장 쉽게 이해하는 이야기는, 두 명의 인물이 서로 갈등하는 이야기다
얼마나 단순하냐
창작에서 상상력은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얌전한 상상력, 교과서 범위 내의 상상력'은 별로 마음에 안 든다
'사회적으로 무난하다고 평가되는' 선을 넘어서야 제대로 된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가벼운 악행'과 '정당한 악행'
기생충(2019년 한국 영화) 감상문 2
기생충(2019년 한국 영화) 감상문 1
엄청 마이너한 게임의 공략집 파일을 갖고 있었는데, 사정이 있어서 잠깐 지웠었다. 그런데 오늘 그걸 다시 구하고 싶어져서 인터넷을 뒤적거려 봤는데 도저히 못 구하겠다. 무슨 검색어를 넣어 봐도 소용이 없어...
장르의 분화
은발벽안 여캐들은 대부분 좋다
연회색 머리카락에 밝은 파란색 눈동자 말이야
웹툰(한국 만화)은 '깔끔한 그림체'를 지향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시종일관 뭔가 보들보들하고 완만하고 미지근한 느낌이다
스토리 전개에는 때때로 강렬한 연출도 필요한데, 그런 상황에서는 깔끔하지 않은 그림체(선이 복잡한 일본 만화 그림체)가 더 나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