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와 코우신 - 엠브리오
'오가와 코우신'의 만화 '엠브리오'를 끝까지 봤다
그림체가 너무 내 취향이어서 보기 시작했는데, 초반부에서 느낀 그대로... 스토리가 끝까지 이상하더라. 그게 가장 아쉬웠다
그림체가 내 취향이었던 점을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섬세하고 여리여리한 느낌의 인물 묘사가 좋았다. 그리고 가는 굵기의 선이 많이 쓰여서 기괴한 느낌이 나는 점도 좋았다. 그림 실력의 한계 때문인지 그림이 군데군데 망가지는(불안정한) 상황이 자주 나타나는데, 나는 그런 망가지고 일그러진 느낌이 좋았다. 흔해빠진 '젊고 트렌디한 그림체'보다는 '옛날 사람의 옛날 그림체' 같은 느낌도 좋았다.
그리고 스토리 쪽을 더 설명하자면... 일단 전체적으로는 벌레를 소재로 한 호러 장르, 괴수물, 재난물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거 보고 나면 벌레 혐오가 생길 정도로, 벌레가 주는 본능적인 불쾌감이 잘 묘사돼 있다.
이 만화의 스토리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주인공인 '메라 에리코'의 생각과 행동이 전혀 공감되지 않는다는 부분일 것 같다. 인간을 갉아먹고 침식하는 '벌레'의 '배아(엠브리오)'가 자기 몸에 기생해서 자라나는데, 병원에 가지도 않으려고 하고 그걸 끝까지 자기 몸에서 키우고 싶어하는 게 전혀 공감도 이해도 안 되더라.
그 벌레가 '외모는 징그럽지만 착한 마음을 가진' 벌레였다면 그래도 좀 더 공감이 됐겠지만, 딱히 착한 벌레라는 묘사도 없다. 그냥 인간과는 다른 생존 방식을 취하며 인간과 경쟁하는(경합하는) 하나의 생물 종일 뿐이다. 인간 입장에서는 그냥 미지의 괴물이고, 수면 아래에서 인간을 위협하고 죽이는 그런 벌레들인 것이다.
최종화 쯤에서 주인공(메라 에리코)은 결국 자기 몸에 기생하던 벌레의 배아를 '출산'하게 되는데, 그러면서도 그 벌레를 옹호한다. 대충 이런 주장을 하면서:
'그 벌레는 딱히 자기들 종의 존속을 위해서 그런 잔인한 행동들을 했던 게 아니다. 그냥 자기 자신을 위해 그랬을 뿐이다. 하나의 생물로서, 그냥 살고 싶기 때문에 살기 위한 행동들을 했을 뿐이다.'
으아 모르겠다... 메라 에리코의 심리는 정말 이해가 안 간다. 긍정적이면서 자애롭고 용감한 성격도 매력적이고, 여리면서 밝은 인상도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벌레를 옹호하는 방식이, 인간 편에 서 있다기보다는 마치 지구 전체, 생물 전체의 편에 서서 옹호하는 그런 느낌이다.
주인공의 심리(동기, 가치관 등)는 '공감이 안 될 만큼 이상해서' 문제인 게 아닌 것 같다. 그냥, 선악의 기준이 너무나 독특해서(인간 입장이 아니라 생물 전체의 입장에서의 선악을 논해서) 문제인 것 같다. 아마 작가도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는 추측이 강하게 드는군...
그리고 이런 재난물?괴수물?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대체 왜 국가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가? 대체 왜 자기들 선에서 해결하려고 설치다가 온갖 위험에 빠지는 것인가? 이게 납득이 가지 않으면 스토리에 몰입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