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같은 글투'로 쓰인 글들

인터넷을 하다 보면, 뭔가... '논문 같은 글투'로 쓰인 글들이 종종 보인다
인문학이나 사회학 같은 걸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논문 쓰다가 잠깐 쉬면서 인터넷에 쓴 듯한 그런 느낌의 글들

그런 글들은 진보 성향의 뉴스기사나 트위터에서 종종 보인다
주로 나오는 단어는 '서사', '폭력', '권력', '양상', '담론', '통념', '지점' 이런 것들인데
단어의 조합이나 조사 사용 같은 부분도 인문 사회 쪽 논문 같다

예를 들면
'해체된 권력의 의존적 관계성 담론의 서사 양상으로 욕망된 구조적 폭력'
대충 이런 느낌으로, 알듯말듯한 알쏭달쏭한 문장을 쓰더라
뭔가 깊은 의미가 있어 보이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모를 그런 느낌
(방금 저 문장은 내가 즉석에서 지어낸 건데 그 느낌이 잘 표현돼서 만족스럽다)

이런 글을 자주 쓰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를 하나 만들어 보고 싶지만
당장 떠오르는 게 없다

그런 사람들은 일상에서 잘 안 쓰는 외래어도 자주 쓰더라
버스, 카드, 스마트폰 이런 단어는 일상적인 외래어지만
나이브, 스탠스, 이데올로기 이런 단어는 그다지 일상적이지 않은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저런 표현들을 별로 안 좋아한다
모든 표현은 최대한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는 게 내 입장이기 때문이다
내 글을 상대가 이해할 수 없었다면, 그건 상대가 교육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내가 글을 더 쉽게 쓰지 못해서다

어렵고 생소한 표현들은 더 쉽게 고쳐져야 한다
물론 쉽게 쓰는 것도 한계가 있긴 하겠지만
 
'야오이'라는 표현이 'BL'이라는 표현으로 완전히 대체된 건 무엇 때문인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 봐도, '야오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별로여서'라는 이유 외에는 찾을 수가 없다. 정말 이 이유 하나 뿐인가?
망붕 = 망상붕자 = 망상분자 = 연예인 등의 실존인물을 소재로 망상하는 사람.
내가 연예인에 관심이 없어서 이런 은어가 있다는 것도 그동안 몰랐었다.
어? '물고기'가 일본어로 뭐지?
스시나 사시미는 알면서 정작 이걸 모를 수가 있다니
'알라딘'의 영문 표기는 aladdin이다.
그런데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거지만 저 표기를 한글로 써 보면 좀 이상하다.
알(al) 아(a) 띤(ddin)... 알아띤.
영어의 표기-발음 불일치가 문제인 걸까,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문제인 걸까
인쇼 = 인터넷 쇼핑몰ㅋㅋㅋㅋㅋㅋㅋㅋ
수더분하다는 표현은 칭찬일까 비하일까
헌술 = 헌팅 술집
줄임말의 세계는 정말 넓구나...
'밝고 건강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종종 쓰이는 것 같은데
나는 그게 좀 싫다. 밝은 사람만이 건강하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물장사'라는 은어가 가리키는 대상이 의외로 다양하더라.
유흥업소, 일반 주점, 화장품 판매, 생수 배달 등
'노잼'이라는 단어는 꽤 수명이 길 것 같다
쓰이는 상황도 다양하지만, '재미없음'를 두 글자로 줄인 거라서 간편하니까
면스 = 면접 스터디
'차가운 합격'이라는 표현이 있던데 검색을 아무리 해봐도 의미를 모르겠더라
그래서 '뜨거운 합격'으로 검색했는데 그제서야 '차가운 합격'의 의미가 이해가 됐다
뜨거운 합격 = 불 합격 = 불합격
차가운 합격 = 그냥 합격
이런 유행어 같은 거 못 따라가겠어...
'사실'과 '팩트'
'노나다'라는 표현 정말 생소하다
'~됐으니 ~는 정말 노났네!' 이런 식으로 쓰이더라
'100% 한국인 아님'은 정확히 무슨 뜻이냐?
한국인이 아닐 가능성이 100%라는 뜻이냐, 아니면 한국인의 특성을 부분적(0~99%)으로만 가졌다는 뜻이냐?
'~이므로(하므로)'를 써야 할 부분에 '~임으로(함으로)'를 쓰는 경우가 종종 보이네
그 둘이 헷갈리는 사람들한테는 그냥 전자를 쓰라고 권하고 싶다
후자를 쓸 상황은 아주 드물다고 생각한다
최애, 덕질, 굿즈, 팬픽
'화해'라는 표현을 좀 이상하게 쓰는 사람들이 있더라
화해는, 쌍방의 잘못이 거의 동등할 때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게 화해고
어느 한쪽의 잘못이 극단적으로 클 때는 화해가 아니라 '사과와 반성'이 맞을 듯
'논문 같은 글투'로 쓰인 글들
호애앵, 귀염뽀짝, 호다닥, 꾹꾹이
나는 이런 느낌의 표현들에 좀 거부감이 있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