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감이 불편한 사람
나는 어릴 때 '걸리버 여행기' 소설을 읽었었다.
그런데 그때의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주인공 걸리버의 방랑벽이었다. 소인국에 갔다가 거인국에 갔다가 하면서 정말 온갖 죽을 고생을 다 하고 기적적으로 고향에 돌아왔는데, 여행지에서 가져온 신기한 물건이나 동물들로 편하게 돈을 벌면서 여생을 보낼 수 있는데도, 그런 삶이 지루하다는 이유로 또 여행을 떠나고 또 개고생을 하는 그런 반복적인 행동들 말이야.
그래도 지금은 그게 조금 이해가 될 것도 같다.
말하자면 안정적인 삶이나 부유함 같은 건 자신이 '최종적으로' 도착할 골인 지점이 아닌 것이다. 자신의 그런 별난 기질 덕분에 안정적인 삶을 얻고 많은 돈을 벌었더라도 그 기질은 계속 그 사람한테 남아있기 때문에, 그대로 안주하고 싶어도 안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억지로 안주하려고 시도해 봤자 뭔가 자기한테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혀 둔 듯한 기분, 남의 고향에 잠깐 구경 온 것 같은 기분, 자기 땅이 아닌 곳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기분만 들 뿐인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예를 들어 볼까...?!
엄청나게 우울하고 비극적인 삶을 살던 어떤 사람이, 엄청나게 우울하고 비극적인 감정을 엄청나게 잘 표현해서 엄청난 대작을 창작함으로써 엄청난 부자가 됐다고 치자. 그래서 좋은 집 멋진 차 비싼 옷 등등 마음껏 사고 사회의 상류층과 어울리며 어딘가 비싼 집의 정원에서 부자 인간들과 최고급 와인을 마신다든가 하는 우아한 자리에 앉아 있다고 치자.
아마 그 사람은 그 자리에 그 분위기에 적응을 못 할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안 될 것이다. 그 자리나 그 사람들의 대화에 전혀 집중하지 않고, 뭔가 결핍된 듯한 표정으로 허공만 멍하게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반쯤은 꿈꾸는 듯한 반쯤은 잠든 듯한 그런 기분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것은ㅡ 어째서일까?!
왜냐하면 그런 성취, 안정감,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이, 그 사람의 기질에 전혀 안 맞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 사람이 가장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분위기는 그런 안정적이고 우아한 분위기가 아닌 것이다.
어쩌면 일부러 자기 재산을 다 버리거나 일부러 가벼운 범죄를 저질러서 사회적인 비난을 유도해서 고립되거나 해서 우울하고 비극적인 삶으로 제발로 걸어들어가버릴지도... 모른다...! 오직 그런 분위기 속에서만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아무튼 사람마다 행복의 조건은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걸리버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