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솔개
내가
현실에서 사회에서 집단에서
일반적인 교류가 너무 어렵고 힘들고 서툰 것은
무엇이 원인일까 생각해 보면...
아마도 인터넷(특히 디시인사이드) 성향의 '극단적으로 [단순하고] [솔직하고] [개인주의적인] 익명의 세상'에만 너무 익숙해서인 것 같다.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을 [단솔개]라고 하자)
마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5~7세 아동 같은 정신세계로 이 '[복잡하고] [겉과 속이 다르고] [집단주의적인] 세상'에서 살아가려니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것이다. 사이즈가 전혀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혀둔 것 같다는 말이다.
그런 세상에서 할 말 못할 말 눈치껏 챙겨가며 살아가는 게 너무너무너무 힘들다.
-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상대가 당황해하지 않을까?
-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되나?
- 이런 이야기는 나의 약점이 되니까 하면 안 되나?
이런 고민을 실시간으로 하다 보면 마치 호흡곤란이 올 듯한 기분이다.
반면에 인터넷 세상에서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서 숨쉬기가 편하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은 저런 생각들이 '너무 익숙해서' 자기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도 굳이 의식하지 않을 것 같은데... 아닌가?
사람의 진심을 알 방법이 없으니 그냥 이렇게 짐작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보통 사람들은 인터넷 세상에 맞는 성향과 현실 세상에 맞는 성향을 왔다갔다하며 마치 스위치를 켜고 끄듯이 두 세상 모두 잘 살 것 같은데, [단솔개] 성향인 나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자기 자신을 그렇게 틀 안에 가둬버리고 확정지어버리는 건 좋지 않아요! 좀 더 살아보고 경험하면 변할 거예요! 저도 변했어요! 마음먹기 나름이에요!
라는 흐릿한 조언을 누군가는 하겠지만, 사람의 기질, 성향, 가치관 같은 게 그렇게 쉽게 바뀔 거라면 이 세상에 애초에 분쟁이나 갈등이 왜 있겠나? 서로 좋아 죽고 못 살던 부부는 왜 성격 차이로 이혼을 하겠나?
사람의 마음의 어떤 부분은 쉽게 바뀌지만 다른 어떤 부분은 거의 안 바뀐다. 그리고 사람마다 마음의 형태도 각각 다르다. 어떤 사람의 마음은 딱딱한 벽돌이고 다른 어떤 사람의 마음은 유연한 찰흙이다. 키가 큰 사람과 키가 작은 사람의 차이, 남자 몸과 여자 몸의 차이처럼, 사람마다 마음에도 차이가 있다. 그 차이가 대체 어느 정도의 차이인지 얼마나 고정불변한 것인지는 과학이 좀 더 발달한 먼 미래에나 알 수 있겠지만...
요컨대 나는 [단솔개] 성향인 것이다.
물론 이런 성향으로 세상을 사는 게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디시인사이드같은 몇몇 인터넷 세상에만 적응 가능한 나의 이런 [단솔개] 기질은 이미 내 자아 같은 거라서 이제와서 바꾸기란 너무 어렵다. 이 핵 부분에 수정을 가하면 내가 내가 아니게 돼버릴 것 같다. 그건 마치 거대로봇의 조종석에 앉은 파일럿을 밖으로 집어던져 버리고 그 파일럿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조종석에 앉히는 것과 같다.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조언 중에는 '알면 유용한 것'이 있고 '알아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이런 기질로 살면 인생 살기 힘들다...라는 조언은 후자에 가깝다.
'알면 유용한 것'의 예시는 '다음 회차 로또 번호'이고,
'알아도 어쩔 수 없는 것'의 예시는 '공부 열심히 해서 명문대에 가면 좋다'다.
쓰다보니 글이 길어져서 뭔가 제대로 된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인데...
모르겠다. 이 글은 그냥 감정의 배설이다. 살아가려면 똥을 쌀 수밖에 없듯이 이런 감정도 배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